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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를 만나는 시간∥

 사회적 거리와 나와의 거리




칼럼 '사회적 거리와 나와의 거리' [사진출처=언스플래시닷컴] 

[더테라피스트=최아룡 칼럼니스트] “요즘 힘드시지요?” 

 

 어느새 인사가 되었다. 누구에게나 건넬 수 있는 인사가 되었다. 코로나 19로 ‘사회적 거리두기’는 전세계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기 때문이다. 세세히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답답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무엇이 힘들지? 가장 힘든 부분은 마음껏 이동할 수 없는 상태일 것이다. 친구를 만나러 갈 수 없고, 가족을 만나러 갈 수도 없다. 심지어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 ‘잠시 멈춤’, ‘셧다운’, ‘라커룽’, ‘Stay at Home' 등 국가마다 명칭은 조금씩 다르지만, 외부활동을 줄이고 멈추었다. 요가수업들도 없어졌다. 여유시간이 많아졌다. 시간이 많아졌으니, 그동안 만나기 힘들었던 친구를 만나야지 생각하자마자, ’아차!’하고는 만날 수 없는 현실을 깨닫게 된다. 

 

시간이 나니, 호스피스센터에 봉사활동가야겠다 하고 마음이 일었으나, 모든 자원봉사자들의 활동도 중지되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혼자 있는 시간이 불가피하게 생겨났다. 자연히 나를 돌아보는 시간도 많아졌다. 문득 깨닫게 된 사실들로 온몸에 전율을 느껴졌다. 그리고 이 거리두기의 시간이 내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를 돌아보았다. 사회적 거리두기이지만, 이것은 오히려 나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진행되는 동안, 집주인 할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는 2층에 살고, 주인 할머니는 장애가 있는 아들과 함께 3층에 살고 계셨다. 두 분 모두 계단 오르내리기가 어려워지고, 집 관리가 힘들어져서 건물 전체를 내놓으셨다고 했다. 새 주인은 건물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지을 계획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5년 동안 살던 집에서 이사하게 되었다. 

 

하필 이런 시기에 이사를 해야 하다니....” 처음 든 생각이었다. 


칼럼 '사회적 거리와 나와의 거리' [사진출처=언스플래시닷컴] 

부동산 사무소를 방문할 수 있을까. 부동산이 소개하는 집이 있어도 방문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이사는 어떻게 하지? 하나부터 열까지 걱정밖에 들지 않았다. 

 

막상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걱정을 하나씩 내려놓을 수 있었다. 수업들이 없어졌기 때문에, 내가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동산에서 전화가 와도, “네, 편한 시간 알려주세요.”, 소개받은 집을 방문하기 위해 남편과 시간을 정할 때에도 시간선택폭이 많았다. 

 

이사 날을 잡는 데도, 이사짐 센터와 시간을 정하는 데도, 새 집에 인터넷 설치기사 방문하는 데에도, 주민 센터로 전입신고를 하는 데에도, 시간 때문에 마음이 바쁘지는 않았다. 만약 평소처럼 수업을 진행했다면, 시간약속을 정하는 것 자체가 일이 되었을 것이었다. 시간에 대한 부담 없이 이사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다. 이사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힘들긴 하지만, 다시 그 의미들을 음미하는 계기가 되었다. 미리 섣불리 의미를 결정할 필요는 없다. 그저 일어나는 현상들을 좀 지켜보자. 


 

<타임>지의 커버스토리


이삿짐을 풀면서, 오래된 주간지 <타임>지를 발견했다. 2001년 7월 16일자였고, 커버스토리가 요가였다. 이 당시에 나는 미국유학을 준비했고, 유학가면 요가를 가르치면서 용돈벌이를 해야겠다 생각하며 요가지도자과정을 마친 시기였다. 내가 이 당시에 이렇게 요가에 관심이 있었구나. 내게 요가는 운명 같은 것일까. 

 칼럼 '사회적 거리와 나와의 거리' [사진출처=더테라피스트 DB]

짐 정리가 어느 정도 되자, 마트도 찾고, 편리하고 조용한 출퇴근길도 찾아야했다. 그래서 집근처를 돌아다녔다. 이리저리 돌아보니, “이곳이....”하며 마치 기억상실증에서 깨어나듯,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었다. 

 

참 많은 기억들이 있는 곳이다. 내가 30여 년 전, 대학입학시험을 치르기 위해 와서 묵었던 모텔, 서울식 된장찌개가 익숙지 않아, 참 맛이 없다면서 식사했던 곳이 이 집 근처였다. 그리고 2001년 10월 31일, 힘든 미투 사건이 발생했던 숯불갈비집도 이 근처였다. 그것이 내게는 요가에서 요가테라피의 세계로 이끌었던 계기이다.

 

내가 2003년 세상 속으로 가는 요가원을 개원했던 곳도, 이 근처의 오피스텔이었다. 남편도 한국에 와서 살았던 곳도 그곳이었다. 우리가 같은 오피스텔 건물에 살았지만, 그 당시에는 서로를 알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참 묘한 인연으로 우리가 만나 결혼을 했으니, 우리 만남의 연결고리가 된 곳이다. 내가 올해 초까지 있던 이대앞 요가원도 새로운 기억을 떠올렸다. 2001년 10월 31일 사건발생 직후에, 내가 겪는 일이 너무 기가 막히고, 내 미래가 어찌될 지 막막해서 점집도 찾아갔다. 그 점집도 그 근처였다는 것이다.

 

2020년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전세계가 언택트 문화가 되어가고 있다. 교육 뿐만 아니라, 뮤지컬, 연극, 음악 등의 공연도 온라인상으로 비대면 형태로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뮤지컬, 연극, 오케스트라 공연들도 온라인으로 보여주는 공연으로 바뀌고 있다. 100인의 테라피스트에서 유튜브 채널 <컴백홈>으로 언택트, 홈트(홈트레이닝) 시스템을 구축하고, 라이브방송 시스템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게 뭐지?’ 하고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드디어 5월 14일 오후 2시에 이서현 원장님의 증상별 요가테라피 첫 생방송이 시작되었다. 집에서 실시간 채팅창을 열고 생방송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나는 마치 우주선 발사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흥분을 느꼈다. 


 칼럼 '사회적 거리와 나와의 거리' [사진출처=언스플래시닷컴] 

사회적 거리두기와 나와의 거리좁히기 


요가를 시작하기 전, 나는 무엇하고 있었던가? 1999년에 현직 언론사 기자들과 인터넷 뉴스방송을 기획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2001년에는 영화처럼 보여주는 무용이라고 ‘비디오 댄스’워크샵이 있었다. 예술의 전당에서 실시되는 워크샵을 위한 동영상을 편집했었다. 대학교내 스튜디오에서 KBS 방송이 실시하던 첫 인터넷 방송 현장에 매주 참여하며, 모니터링을 했었다. 채팅창에 이모티콘이 조금만 많아져도, 서버가 다운되었던 때였다. 공대 출신 대학원생들은, 한 두 번 참석하고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나는 아는 게 많지 않다보니, 배우는 입장에서 매주 참여했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시스템들을 배울 수 있었다. 

 

이 모든 기억들이 이번 사회적 거리 기간에 한꺼번에 화산이 폭발하듯 떠오른다. 아, 내가 그랬구나.’ 

 

이 사회적 거리두기 시간이 대면접촉이 줄어들어 사람들을 만날 수 없어 고립된 듯 외롭고 힘든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또한 나와 만나는 요가명상시간이다. 그동안 내가 돌아보지 못했던 외로웠던 나, 소외되었던 내 기억들을 만나는 시간이 될 수 있다. 나와 나의 내면과의 거리는 한결 줄어들고,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씩 돌아보면서, 내게서 일어나고 있는 우연 같은 운명들을 알아차리는 것도 필요하다. 20여년이 지나서, 나는 요가테라피라는 컨텐츠로 온라인 사회를 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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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5-18 11:4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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