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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책읽는곰] 

[더테라피스트=최수은 에디터] 성인이 동화책을 읽어도 되는 것처럼 착하지 않아도 된다. 로렌 차일드의 「착해야 하나요?」는 우리에게 무수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책 속의 유진은 누구나 인정하는 착한 아이다. 반찬 투정을 하지 않고, 잠자리에 들 시간에는 꼭 잠을 잔다. 궂은일도 마다 하지 않고, 타인의 일도 자기 일처럼 도맡아 한다. 어른들 말도 잘 듣고, 어른들이 있으나 없으나 한결같이 착한 아이다. 유진의 부모님은 유진을 늘 칭찬하며 ‘착한 아이'라는 이름표를 붙여준다. 반면 유진의 동생은 반찬 투정도 하고 밤늦게까지 과자를 먹으며 TV를 보고, 할 일도 미루기 일쑤다. 엄마 아빠도 그런 제시에게 항복한다.

 

문득 유진은 자신과 다른 제시의 모습과 제시를 대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괴리감을 느끼게 된다. 유진도 사실은 먹기 싫은 반찬이 있고, 늦게까지 TV도 보고 싶고, 남이 하기 싫은 일은 자신도 싫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유진도 ‘착한 아이'라는 이름표를 버리고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유진의 부모는 유진을 누구를 위해 ‘착한 아이'라는 이름표를 붙여줬을까? 결국은 어른의 문제가 아닐까?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착한 아이를 강요당하고 살며 나의 자식에게도 나도 모르게 내가 겪었던 부조리를 아이에게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생각해봐야 할 때이다. 착한 아이라는 포장지는 누구를 위한 것이며, 그것이 과연 칭찬인지에 대해서도 스스로 본질적인 물음을 가져야 한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Good Boy Syndrome) 또는 착한 사람 증후군(Nice Guy Syndrome)은 실제로 전 세계에 존재하는 정신질환이다. 아이가 또는 사람이 타인으로부터 착하다는 반응을 듣기 위해 내면의 욕구를 억압해서 생기는 심리적 콤플렉스를 뜻한다. 아이는 버림받지 않기 위해 환경에 적응하려고 어린이의 기본적인 의존 욕구를 거부하고 억압하는 방어기제로 형성된다. 이런 심리상태가 올바르게 해결되지 않고 성장한 어른은 ‘착한 사람으로서의 이미지'를 유지하려는 강박관념을 가지는 착한 사람 증후군을 앓게 된다.

 

아이가 어른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서 또 그 아이가 어른의 말을 잘 듣는다고 해서 그 아이가 나쁜 아이거나 착한 아이가 아닌 것을 어른들은 알고 있다. 다만 입버릇처럼 어른의 욕구를 충족시켰을 때 ‘착하다'라는 말을 예쁘게 치장한 칭찬으로 이용하고 있다. ‘안 오면 두고 간다'라는 식의 말들이 반복되며 우리의 아이들에게 유기공포를 조성한 건 아닌지, 무신경함과 무의식 자체가 아이에게 폭력이 되는 건 아닌지 나의 무책임한 어떤 한마디가 아이를 아프게 하고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해 이 책을 계기로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됐다.

 

착하지 않아도 된다. 착한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다. 착할 필요도 없다. ‘착함’의 기준은 무엇이며, 우리가 써야 하는 ‘착하다'는 의미가 곡해되어 나의 기준에 착함을 맞추어 남발하지 말아야 한다. 선(善)은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가 지식으로 알고 있는 선과 내가 남발했던 선은 차이가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착함은 내 욕망에 맞추거나 강요해선 안 된다. 그리고 내가 하는 행동이 나를 ‘착함'의 틀로 억압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계기도 되었으면 한다.

 

유진이 착한 아이 이름표를 버린 순간 박수 쳐줄 줄 아는 어른이, 또 유진에게 하고 싶은 데로 해도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부모가 이 세상에 많이 존재했으면 하는 바람이며 나 역시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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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2-18 11: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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