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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이 없다




칼럼 '빈틈이 없다' [사진출처=언스플래시닷컴]

 

[더테라피스트=최아룡 칼럼니스트] 춘(春), 하(夏), 추(秋), 동(冬). 봄여름가을겨울이 어우러져 4계절을 이루고, 1년이라는 주기가 완성된다. 추워서 잔뜩 움츠렸던 겨울이 가고, 푸근한 바람이 느껴지는 즈음이면, 봄이 오는 것을 알게 된다. 조금이라도 빨리 봄을 맞으려는 듯 대문 앞에 큼지막하게 붙여놓는 문구가 있다. 입춘대길(立春大吉). 

 

‘입춘’이라는 말이 익숙해서인지, 가을이 올 즈음에 이루어지는 대학입학설명회, 취업박람회에 몰려든 사람들을 보여주며, ‘입추의 여지도 없다’라는 뉴스보도를 접하면서, ‘입추’도 가을이 오는 의미(立秋)로 짐작했다. 가을이 올 여유가 없다는 말인가. 

 

모른다는 말은 부끄러워서 차마 하지 못하고, 대충 이해하고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대신 내가 확실히 의미를 알지 못하는 말을 사용하지 않으면, 말실수 할 일도 없고 체면구길 일도 없다. 내가 실수하는 빈틈은 보여주지 않는 방법이다. 하하. 

 

그러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상관없이, 봄날 벚꽃놀이, 또는 한여름 해운대 해변가를보여주며 ‘입추의 여지는 없다’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들을 접하면서, 가을도 아닌데 왜 ‘입추’라는 말이 사용하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의미를 찾아보았다. 

 

‘입추의 여지가 없다’에서 추는 가을 추가 아니라, 송곳(錐)을 의미했다. 입추지지(立錐之地). 송곳이 서있을 만한 공간. 아주 작고 미세한 공간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니 ‘입추의 여지가 없다’는 송곳조차 서있을 작은 공간, 빈틈이 없다는 의미이다. 

 

그동안 전혀 엉뚱한 의미로 생각했던 것에 부끄러워졌지만, 아무도 내 부끄러움을 알아차리지 못해. 괜찮아. 이젠 혹시나 실수할까 마음 졸이지 않고 적재적소에 쓰면 되는 거야. 그런데 내가 모르는 빈틈을 일찍 인정했더라면, 그 빈틈을 메우는 일도 더 일찍 할 수 있었을 텐데. 하하. 

 칼럼 '빈틈이 없다' [사진출처=언스플래시닷컴]


내 삶의 공간에서 입추지지는 있는가 없는가. 도시의 중심부는 이동 중에 차가 막히거나, 주차공간을 찾지 못하면 약속시간에 도착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대중교통이 더 편리할 때가 많다. 서울에서 이동에 제일 힘든 지역은 출퇴근 시간대의 신도림역 일대에서부터 강남역에서 삼성역까지 이어지는 강남지역이다. 1호선, 2호선 연결되는 신도림역에서 강남권으로 연결되는 2호선 라인, 여의도를 거쳐 지하철 9호선을 타보면,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빈틈이 없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줄에 서 있다 보면, 사람들에게 떠밀려서 승차하게 된다. 무사히 승차해도, 숨 쉬기가 어렵다. 물고기가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숨을 쉬듯, 나도 고개를 뒤로 살짝 젖혀 천정을 바라보며 숨을 쉰다. 그렇게 겨우 산소를 공급받는다. 

 

승객들 사이에 손이 끼어도, 손 한 번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 두 발을 제자리를 찾지 못했지만 자세를 바로잡을 여유 공간이 없다. 그렇게 어정쩡한 자세로 있다가, 사람들에게 떠밀려서 하차하게 된다. 하차 직후에 사람들의 행렬에서 즉시 비켜서있지 않으면, 또 떠밀려서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빈틈이 없으니깐. 그래, 이게 입추의 여지가 없는 것이야. 이렇게 숨쉬기도 힘이 든다. 

 

유럽의 도시공간을 연구한 학자들은 ‘도시’가 생겨나고 마차로 이동하던 초기에, 도시를 우리의 몸에 비유했다. 건축물의 기둥과 벽, 지붕은 단단하게 빈틈없이 지어져야 한다. 그러나 건축물 사이의 비어있는 공간, 도로, 상하수도관 등은 우리의 폐와 혈관과 같다고 보았다. 비어있고, 막힘없이 흘러야 하고, 공기, 식수와 오폐수들이 순환하며 도시도 숨을 쉬고, 건강한 몸처럼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도시는 현대인의 일상이 되었다. 거꾸로 우리 몸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현대의 도시공간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도로와 터널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차가 막히고, 어디로도 가지 못하는 것이 동맥경화요, 뇌경색이다. 지하철 역, 지하철 자체는 빈틈없고 튼튼하게 만들어져야 하지만, 그 안에 사람이 꽉 차면 꼼짝달싹 할 수 없다. 

 칼럼 '빈틈이 없다' [사진출처=언스플래시닷컴]


우리 위(胃)도 음식물이 새어나가지 않게 위벽은 빈틈없이 채워져야 하지만, 위 안에 음식물이 꽉 차서 위가 움직이지도 못하면 소화가 되지 않는다. 위에 꽉 찬 음식물을 소화하기 위해서, 체내 혈액들이 위로 총집결한다. 그래서 혈액이 부족해진 뇌는 졸음을 느끼게 된다. 

 

뇌가 일시적으로 두뇌활동을 할 수 없게 된다. <하타 요가 쁘라띠삐까>에서 음식을 섭취할 때, 위의 4분의 3을 채우라고 한다. 4분의 1은 비워두라는 말이다. 그래야 위가 원활하게 움직이고, 체내의 다른 기관에서 활동할 혈액들을 동원하지 않아도 된다. 졸음도 막을 수 있고, 두뇌활동도 유지할 수 있으니 지혜로워질 수 있다. 몸에 혈액이 골고루 순환할 수 있으니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내 몸이 원하는 음식은, 지금 이 순간 내게 결핍된 부분이고 빈틈이다. 이것을 채우고 메워줘야 한다. 대신 내 위가 움직일 수 있는 빈틈을 남겨두고 먹으면 된다. 처음부터 위의 4분의 1을 비우기가 어렵다면, 송곳 하나 들어설 공간만큼의 빈틈을 남겨두고 먹어보자. 그다음은 송곳 두 개, 송곳 세 개 들어설 만큼의 빈틈을 조금씩 늘려갈 수 있을 것이다. 

 

빈틈을 마련해주는 행위가 내 위를 편안하게 해주고, 내 몸을 편안하게 해준다고 생각하면 기쁜 마음으로 음식조절이 된다. ‘과식하면 안돼’, ‘굶어야 해’, ‘먹어선 안돼’라고 강박증을 갖지 않아도, 체중조절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내 몸에서 빈틈이 없어야 할 부분과 빈틈을 마련해줘야 할 부분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내 삶에서 녹아서 익숙해지게 되면, 내가 해야 할 일, 감정을 사용하는 행위, 나아가 투자하는 행위에도 한곳으로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빈틈없음과 빈틈을 만드는 일에 균형감을 갖게 된다. 위벽은 송곳만큼의 빈틈도 없어야 하지만, 위 내부는 송곳 한 다발만큼의 빈틈이 있어야 한다. 요가는 분별이고 균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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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6-08 16: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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